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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902년 7월, 일본동경제국대학 공과대학
조교수 관야정(關野貞, 당시 35세)은 일본정부의 명령으로 불 |
| 과 두 달 남짓동안 한국 전역을 돌아다니며
고조선부터 당시까지의 각종 문화재들을 조사했다. |
| "한국인은 취미가 부족하여 미술애호심이
없으므로, 귀중한 문화재가 소멸하는 것을 막기위하여 적극 |
| 적으로 건축조사에 나선다" 고
끔찍이도 걱정해 주었으나, 결국 그가 쓴 보고서는 일제시기 한국문화 |
| 말살 및 방대한 문화재 수탈에 대한 '카탈로그'
노릇을 했다고 볼 수 있다. |
| 이런 것이 100년 뒤 오늘날에는 한국전통문화
복원에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되어 있다는 것도 역사의 |
| 아이러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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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 사진을 찍을 때는 고종이 1896년
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고 궁을 비운 지 6년이 지난 무렵이다. |
| 1867년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했을 때의
모습은 거의 그대로 남아있지만,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|
| 닿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어서 관야정은,
"황괴(荒壞)하고, 기둥이 기울고, 잡초가 기단을 덮고, 창서 |
| (蒼鼠)가 고와(古瓦)에 숨어 있어도 수축(修築)할
여유가 없을 것 같다" 라고 비웃었다. |
| 원본 - 關野貞(Sekino, Tadashi),
<韓國建築調査報告>, 東京帝國大學, 1904년 |
| 번역 - 姜奉辰, <韓國의 建築과
藝術>, 산업도서출판공사, 1990년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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큰 사진으로 볼 수 있습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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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2년의 경복궁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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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2년의 창덕궁과 창경궁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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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02년의 서울풍경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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